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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칼럼
event_available 19.04.12 1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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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초점

[의술 인술] 면역력의 두 얼굴

location_on지점명 : 서초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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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육아 용품들, 분유와 이유식 제품은 물론 건강기능식품에 이르기까지 ‘면역’은 중요한 광고 수단이 된다.  

아직 세상을 살아갈 만한 면역이 충분치 못한 아이들에게 면역은 요술지팡이와 같은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면역력을 강하게 해주면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더 똑똑하게 자랄 것만 같다. 

물론 건강에 있어서만큼은 ‘좋은 면역’이 긍정의 화신이 될 만하다. 이지스(Aegis·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방패)처럼 외부의 못된 병균을 스스로 알아서 방어해주는 건강의 수호신이랄까. 이런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면역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건강도 더욱더 좋아져야 맞는 이치 같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에게 매우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알레르기 질환(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비염, 천식, 두드러기 등)은 과잉 활성화된 면역 상태가 증상의 주요 원인이다. 이런 질환을 치료할 때 막연히 면역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오히려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 면역력 강화는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쁜 면역’이란 어떤 상태일까.  

 

첫째, 만성적인 면역 저하 상태이다. 이것이 나쁜 면역 상태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만성적인 호흡기 면역 저하 상태(잦은 감기,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오랜 감기, 만성 축농증과 만성 중이염, 반복되는 편도염, 임파선염, 기관지염, 폐렴 등)와 만성적인 소화기 면역 저하 상태(만성 식욕부진, 잦은 복통, 변비와 설사, 헛구역질, 잦은 장염, 식체 등)는 소아 한의원 진료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특히 감기 치료를 할 때에도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이 일반화된 의료 현실에서 만성적인 면역 저하 상태에 대한 적절한 개입, 즉 면역학적 강화는 어린이 건강 증진에 있어 매우 특별한 보건사회학적 의미를 갖는다.  

 

둘째, ‘과잉 면역’ 또한 나쁜 면역 상태이다. 앞서 언급한 알레르기 질환은 면역이 과잉 활성화되어 별것 아닌 외부 인자에 대해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면역 불안정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막연히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 가령 시중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홍삼 제품을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 없이 먹는 것 등은 오히려 임상적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전문 의료기관에서 면역학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집중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자가 면역’ 상태이다. 면역계의 인식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내부 인자를 외부 인자로 오해하고,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게 되는 상황이다. 면역 인식의 대혼란 상태이며, 피아(彼我·적군과 아군) 구분을 못하는 면역 상태인 것이다. 사실 이런 면역 상태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원인 규명과 같은 본질적인 치료가 아닌, 증상 개선 및 악화 방지와 같은 소극적인 목표를 설정해 치료하게 된다. 간혹 만성적인 면역 저하와 과잉 면역이 겹친, 복합적인 면역 불균형 상태도 관찰된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적절한 영양과 좋은 환경을 제공하며 ‘좋은 면역’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의학의 본질이다.  

건강하지 못한, 나쁜 면역 상태에 있는 아이들이 하루속히 좋은 면역을 획득하기 위해선 적절한 환경 개선과 임상적 혜택이 필요하다. 올바른 실천은 지식에서 얻은 깨달음과 합리적인 접근에서 비롯된다.  

막연히 나쁜 것으로만 알았던 스트레스에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와 도움이 안되는 ‘나쁜 스트레스(distress)’가 있듯이,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알았던 면역 역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면역 상태와 도움이 안되는 나쁜 면역 상태가 있다.  


이 사실을 아이를 돌보는 모든 어른이 인식한다면, 아이들의 좋은 면역에 도움이 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동도 뒤따를 것이다.